[부산=뉴시스] 손정빈 기자 = "1996년 1회 행사 때 부산 남포동 거리를 헤매며 영화를 봤습니다. 당시에 막연하게 '나도 언젠가 영화를 만들면 부산에서 상영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오랜 시간이 흘러 제 영화를 부산에서 개막으로 선보이게 돼 기쁘고 감사합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은 '한국이 싫어서'다. 이 영화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장건재(46)는 2015년 '한 여름 밤의 판타지아'로 주목 받은 한국 독립영화계 대표 감독이다. 장 감독은 4일 개막식을 앞두고 열린 개막작 기자회견에서 부산영화제와 인연을 이렇게 얘기하며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28회가 지날 동안 부산영화제도 성장했고, 저도 영화 작업을 계속 이어오면서 이런 일이 생기게 됐습니다."

배우 고아성이 주연한 '한국이 싫어서' 역시 부산과 인연이 깊다. 이 영화는 2016년 21회 행사 때 아시아 프로젝트 마켓에서 처음 발을 뗐다. 그랬던 작품이 7년을 돌아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이다. 영화 작업이 예상보다 길어지기도 했고, 해외 촬영이 반드시 필요한 영화여서 코로나 사태 기간엔 영화 제작이 아예 중단되기도 했다. 장 감독은 "부산에서 씨앗을 뿌려서 잘 키워 데리고 온 느낌"이라고 했다. 장 감독과 함께 이 영화를 만든 윤희영 프로듀서는 "긴 시간 돌아왔지만, 제한된 상황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고 결과물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싫어서'는 20대 여성 '주계나'(고아성)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뉴질랜드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계나와 계나 주변 인물, 그가 뉴질랜드에 가서 만나는 인간 군상을 통해 이 시대 청춘에 관해 얘기한다. 영화는 장강명 작가가 2015년 내놓은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장 감독은 출간 직후 비행기 안에서 이 책을 읽었고 꼭 한 번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2014년과 2015년, 2016년은 한국 사회가 큰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며 "나와 계나는 다른 상황에 있긴 했지만 공명하는 부분이 있어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여러 사람과 나누고 싶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당시엔 세월호,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등이 있었습니다. 이후에 한국 사회가 크게 변했죠. 이 한가운데 이 소설이 있었고요. 이 작품은 당대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거침 없이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 감독은 "한국 사회 미래를 생각해볼 때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계속 이대로 살아도 되는 것인가 등의 질문을 작품을 통해 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사회에 대한 어떤 코멘트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한국 사회 상황을 보여주고 관객 의견을 경청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영화 '한국이 싫어서'엔 한국이 맞지 않아서 뉴질랜드로 간 계나 뿐만 아니라 원하던 곳에 취직해 착실히 살아가는 계나의 남자친구, 뉴질랜드에서 꿈을 찾은 계나의 친구, 한국에서 현실에 나름 만족하며 사는 계나의 동생, 끝내 원하는 걸 얻지 못하고 죽음을 택한 대학 동창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수석 프로그래머인 남동철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은 "'한국이 싫어서'라는 제목이 한국이라는 나라를 특정하고 있지만 어떤 면에선 젊은 세대가 가진 어려움을 보편적으로 잘 표현한 말 같다"며 "영화가 우리 삶을 얼마나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볼 때 이 작품엔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배우 고아성이 출연해 주목 받았다. 장 감독은 고아성이 대본을 읽자마자 연락해 출연을 결정했고, 코로나 사태로 영화 제작이 지연되는 중에도 이 작품을 기다려줬다고 했다. 계나를 표현하는 데 고아성의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가 계나라는 캐릭터를 함께 만든 거이나 다름 없다고 했다. 장 감독은 "고아성을 통해 계나가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했다. 고아성이 이 영화가 제작되는 중에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갔기 때문에 그에게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본다"고 했다.

다만 고아성은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최근 개인 일정 도중 천추골을 다쳐 전치 12주 진단을 받고 입원 중이다. 차기작으로 정해졌던 티빙 드라마 '춘화연애담'에서도 하차했다. 고아성과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주종혁과 김우겸은 한목소리로 "고아성은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며 "빨리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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