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잠식하다 집어삼킨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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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잠식하다 집어삼킨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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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하마구치 류스케(濱口竜介·46) 감독이 만든 영화 중에 그렇지 않은 작품이 없겠지만, 새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3월27일 공개)에서 흔히 얘기하는 영화 보는 즐거움을 찾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신 이 작품에선 현재 영화 예술 최전선에 서서 정점을 향해 가는 감독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 하마구치 감독의 이 확신은 평범한 영화에선 어떤 식으로도 발견될 수 없는 아우라를 내뿜는다. 이건 마력에 가깝다. 그의 영화가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일단 홀리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관객을 휘어 잡는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엔 영화 보는 즐거움은 없을지 몰라도 영화를 알아가는 기쁨이 있다. 이런 영화는 이 영화 한 편 밖에 없을 거라는 믿음 같은 것이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편하게 즐길 수 없다. 러닝타임은 106분 밖에 되지 않지만 정적이고 간결한데다가 영화라고 하면 으레 벌어지는 극적인 사건 같은 게 없다. 말미에 이르기 전까지는 플롯의 굴곡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뒤집어 엎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크게 요동치는 마지막 대목에선 누구나 충격을 받겠지만 혼란 이상의 감상을 느끼지 못할 관객도 많을 것이다. 도쿄 외곽 시골 마을에 글램핑장이 들어서게 된 뒤 마을 주민과 사업 관계자들이 대립한다는 게 이 영화의 얼개이지만, 직접 묘사되는 갈등이라고 해봐야 마을 회관에서 열린 설명회 중에 벌어진 점잖은 수준의 설전 정도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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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미니멀한 촬영 방식이, 끝나기 직전까지 평평하기만하던 그 플롯이, 그리고 그 갑작스럽게 폭주하는 그 엔딩이, 대단할 게 없어 보이는 그 대화들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비범함이다. 하마구치 감독은 편하지 않은 고요함으로 관객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간다. 하늘에 균열이 생긴 듯한 나뭇가지의 행렬은 단순하나 불길하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카메라의 시선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마음에 잔상을 남기고, 저 미동도 없이 얼어 붙은 호수는 예사롭지 않다. 멀리서 들려온 총성이나 날카로운 가시나무는 어떤가. 그리고 한 치 빈틈이 안 보이는 저 대사들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파문을 머릿속에 만들어 놓고 있지 않나. 그리고나서 영화는 보란 듯이 폭발해버린다.

어떤 문법에도 얽매이고 않고 어떤 레퍼런스도 없다는 듯이 탄생한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의 자신만만함은 하마구치 감독의 새로운 차원이다. 일단 줄어든 대사량이 그의 영화가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갔다는 걸 방증한다. 그의 전작들은 마치 대사로 서사를 쌓아 올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말에 의존했고 그게 하마구치 감독만의 방식이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대사는 하마구치 영화라는 게 실감될 정도로 치밀하고 정확하지만 전에 보여준 적 없을 정도로 압축돼 있다. 말이 사라진 자리는 대사만큼이나 유려해진 이미지와 더 적극적인 카메라 움직임이 차지했다. 게다가 전에 없던 폭력까지. 이런 변화는 어떻게 만들든 하마구치는 하마구치라는 걸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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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하려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극 중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상류에서 하는 일은 어떻게든 하류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라는 대사나 글램핑장 정화조 용량을 두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균형에 관해 언급하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제목이 직설하는 것처럼 인간의 시각에서 선악을 나누고 정의와 불의를 구분한다는 건 의미 없는 일이라는 주장 역시 새롭다고는 할 수 없다. 가장 무고해 보이는 이에게 최악의 사고가 생긴다는 것,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심부름꾼으로 불리는 사내가 저 무지한 침입자를 결국 벌하고만다는 것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담긴 자연의 시각을 효율적으로 함축한 듯하다.

그렇다고 메시지의 보편성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가치를 깎아 내리진 못한다. 세상에 새로운 이야기란 건 없다는 말은 결국 새롭지 않은 것을 새롭게 느끼게 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서 하마구치 감독은 러닝 타임을 최대한 늘어뜨리거나 안톤 체호프 연극을 직접 인용하고 수어(手語)를 쓴다든지 혹은 하나의 감각을 겨냥해 각기 다른 단편을 묶어내는 등 형식과 구조에 변화를 주는 데 결코 머뭇거리지 않는다. 이번에 그의 영화는 러닝타임을 축소하고, 플롯을 평탄화하며, 대사를 줄이고, 충격을 가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렇게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온전히 새로운 영화가 된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작품이라는 걸 의심케 하지 않는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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